<예쁜 여자, 잘 생긴 남자를 애써 쳐다보지 말아야 할 이유 있나?>

작성자
김수복 김수복
작성일
2017-08-25 03:35
조회
1660
2017년 8월 25일 복음묵상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예쁜 여자, 잘 생긴 남자를 애써 쳐다보지 말아야 할 이유 있나?>

<마태오 복음서 제22장 34-40절>

첫째 가는 계명 (마르 12:28-34; 루가 10:25-28)
34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35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36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37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39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40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나: 이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오래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에는 613개의 율법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365개가 금령이었고, 248개가 적극적인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복잡한 율법 규정들을 도저히 암기할 수도 지켜낼 수도 없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그 율법 규정들 가운데 어떤 규정이 꼭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정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 규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답변하십니다. 우리는 실정법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서~

<예쁜 여자, 잘 생긴 남자를 애써 쳐다보지 말아야 할 이유 있나?>
* 남자가 예뻐 보이는 여자를 쳐다보면 안 되는가? 된다.
* 여자가 잘 생겨 보이는 남자를 쳐다보면 안 되는가? 된다.
* 그러면, 별로 예뻐 보이지 않는 여자는?
별로 잘 생겨 보이지 않는 남자는?
* 남녀노소 모든 여자와 모든 남자가
사랑스러워지는 경지는 없는가? 있다.
* 곰보도 곰배팔이도 얼치기도
끔찍이 사랑스러워지는 경지는 없는가? 있다.
(* 곰보와 곰배팔이와 얼치기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더 정확하게 하고 있을까? 그렇다.)
(* 곰보와 곰배팔이와 얼치기에게
오히려 인간애와 인류애가
소중하고 절실하지 않을까? 그렇다.)
* 모든 여자와 모든 남자를
내 자신으로 여기는 경지는 없는가? 있다.
* 모든 여자와 모든 남자가
한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경지는 없는가? 있다.
(* 부처님과 예수님과 마호매트님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그렇고 말고.)
(* 그렇게 이름난 사람들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중들이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그렇고 말고.)
(* 나도, 우리도 모두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까?
그럴 수 있고 말고.)

<5·18 발포 명령권자 밝혀낼 단서 나왔다>
*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이번 자료는 당시 공수부대가 20일 밤 실탄 지급뿐만 아니라 상부의 발포명령을 하달받았다는 정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정수만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보안대가 작성한 군 자료에 발포명령 하달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발포 명령권자가 누구였는 지를 밝히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문서엔 당시 계엄사령부가 공군 전투기 폭격 대기 명령에 이어 해병대 병력을 광주에 파견하려고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이 상황일지엔 ‘마산 주둔 해병 1사단 1개 대대 목포로 이동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수원 제10전투비행단 101대대 F-5E/F 전투기 조종사들이 5월 21~22일 광주로 출격하기 위해 공지대 공격 폭탄을 싣고 대기중이었다는 증언에 이어 해병대까지 동원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당시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투입한 공수부대 등 육군 뿐만 아니라 공군(전투기), 해군 예하인 해병대 등 육해공 국군병력을 모두 동원하려했었다는 점은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섬멸할 ‘적’으로 간주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08149.html?_fr=mt1

<‘5·18 발포 거부’ 안병하 경무관 흉상 세운다>
* 경찰청은 지난 22일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안 경무관을 선정하고 흉상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는 전남도경찰국장(현 전남경찰청장)이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로부터 경찰만으로는 치안유지가 어려우니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는 강요를 받았지만 상황 악화를 우려해 따르지 않았다. 이어 군의 집단 발포 이후 ‘경찰도 광주시민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도 끝내 거부했다. 오히려 “경찰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경찰의 무기를 회수했다. 당시 전남도경 상황일지에는 “경찰봉 사용에 유의하라. 반말과 욕설을 쓰지 마라. 주동자 이외에는 연행하지 말라. 그들이 식사는 거르지 않는지 신경 써라”는 등 인권을 살피려는 그의 언행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행적이 알려지면서 그는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 하루 전인 80년 5월26일 직무유기로 몰려 직위해제된 뒤 일주일 만에 강제사직을 당했다. 이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 등 모진 고초를 겪었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88년 10월 숨졌다. 그는 92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2006년 인권을 지키다 순직한 국가유공자로 명예를 되찾았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08106.html?_fr=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