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배자들을 믿지 않는다>

작성자
김수복 김수복
작성일
2017-12-10 07:46
조회
818
2017년 12월 10일 복음묵상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우리는 지배자들을 믿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서 제1장 1-8절>
세례자 요한의 선포 (마태 3:1-12; 루가 3:1-18; 요한 1:19-28)
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너: 마르코 복음서는 어떻게 시작하고 있나요?
나: 마르코 복음서는 매우 단순하게 시작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갈릴래아 나자렛을 떠나(1,9)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자 요한이 죽은 다음 갈리래아로 돌아와(1,14),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 및 장로들과 공개적으로 대결하는 결정적인 순간까지는(10,1)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십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너: 예수님을 어디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나: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인류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제자들이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계속해야 할 활동의 시작임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분이 하신 일을 계속할 때만이 예수님께서 자기들 가운데 현존해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를 계속 실천함으로써 그분을 따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너: 기쁜 소식(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나: 마르코는 복음서 저자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저술을 기쁜 소식(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말할 뿐이지 한 번도 그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실천’이며, 그분의 말씀은 항상 실천을 수반하기에 새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쁜 소식(복음)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나고 실현되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복음화’란 역사 속에 현존해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사람들이 목격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행동’과 ‘실천’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너: 예수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나: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기쁜 소식(복음)이란 팔레스타인에서 사셨던 ‘나자렛 예수’라는 구체적인 인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역사의 시작이 없었다면 그 어떠한 기쁜 소식도 좋은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역사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바꾸어놓는 변혁 활동과 실천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뜻할까요?

너: ‘메시아’란 무슨 뜻입니까?
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가 잃어버린 자유를 다시 찾아줄 어떤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인물을 ‘메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어로 ‘메시아’라고 하며 하느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시라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어떤 메시아(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너: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요?
나: 로마는 카이사르가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을 기쁜 소식으로 알아 축하했습니다. 마르코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선포함으로써 로마 황제를 신격화하는 로마인들에게 도전하는 기쁜 소식을 외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로마 제국처럼 힘없는 사람들과 힘없는 나라들을 약탈하고 침략하는 불의한 사회구조를 뒤집어엎으려는 반란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무슨 일을 하려고 합니까?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이제 내가 일꾼을 너보다 먼저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놓으리라." 하였고,
3 또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하였는데, 기록되어 있는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5 그 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7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너: 세례자 요한은 어떤 인물입니까?
나: 말라키서에는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3,1)고 나오며, 탈출기에서는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탈출 23,20)고 나옵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합니다. 즉 복음(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은 이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자기 성취를 추구하지 말고 참된 메시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증명해 주신 대로 백성이 하느님을 힘입어 자기네 스스로를 이기심과 욕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까?

너: 광야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나: 광야는 성전과 대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는 전령이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마르코는 하느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이 중심에서 떨어진 변두리에서, 즉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곳과 힘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불평등한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불의한 관계에서 정의로운 관계로 바꾸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어디에서 바르게 사는 길을 외치고 있습니까? 또 어떻게 외치고 있습니까?

너: 전령은 누구입니까?
나: 마르코는 엘리야와 비슷한 세례자 요한이라는 새로운 예언자가 등장했다고 주장합니다. 엘리야는 종교를 이용하여 백성을 약탈하는 행위를 반대했습니다. 항상 백성 편에 서서 그들의 생존권을 감싸고 사회불의와 부정부패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참조. 1열왕 17-21). 따라서 세례자 요한이 등장했다는 것은 지배와 억압과 착취를 일삼는 모든 권력에 대항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소리가 되살아났음을 뜻합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을 본받고 있습니까?

너: 세례자 요한은 무엇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나: 세례자 요한은 두 가지를 선포합니다. 즉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고(1,4), 자기보다 더 훌륭한 분이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주시리라고 선포합니다(1,7). 우리는 무엇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너: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다니요?
나: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성령으로 베푸실 세례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능력,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길과 그 길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메시아가 몸소 맞서 싸워야 할 불의와 대결하는 데 필요한 힘 자체이십니다. 우리도 불의와 싸울 때 성령의 힘으로 싸우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서~
<우리는 지배자들을 믿지 않는다>
* 트럼프가 역겹다.
* 트럼프를 뽑은 미국민들이 역겹다.
* 트럼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배자들이 역겹다.
* 지배자들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이
위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들을
쫓아낼 때 그들은 진정으로 위대해진다.

<김용민 “MB 쇠고랑, 이거면 빼박이다”>-맘마이스
https://www.youtube.com/watch?v=wnVb6-HrO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