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남북회담이 성사되려면>

작성자
김수복 김수복
작성일
2018-02-18 04:38
조회
1138
2018년 2월 18일 주일 복음묵상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마르코 복음서 제1장 12-15절>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 (마태 4:1-11; 루가 4:1-13)
1장 12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너: 메시아(구세주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였다고요?
나: ‘예수’는 흔하디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민초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아들’ 또는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족보를 제시하면서 그분이 귀한 가문의 후손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 갈릴래아의 나자렛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갈릴래아는 이방인들과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처럼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 지방 출신은 다른 곳에서도 거의 다 하층민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귀한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평범한 민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까?

너: ‘예수’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나: ‘예수’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즉 평범한 민초들,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평범한 민초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습니까?

너: 민초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요?
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귀하디귀한 자녀입니다. 민초들도 하느님의 귀하디귀한 자녀입니다. 민초였던 예수님께서도 귀하디귀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습니다.”(1,10)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靈)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민초들의 혼(魂)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셨습니다. 우리 민초들도 예수님처럼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너: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들’, ‘마음에 들어 하시는 아들’이시라고 하셨다고요?
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네 민초들도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 ‘마음에 들어 하시는 자녀’로 여기고 계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네 민초들도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하느님의 자녀’로 내세우면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너: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무엇을 가리켜 보이고 있습니까?
나: 그 세례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구세주 그리스도), 세상 안에 현존하여 계시는 하느님의 아드님, 증오와 불의를 깨부수고 사랑과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섬김을 실천하는 분이심을 가리켜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로 한 우리네 민초들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사람을 섬김으로써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너: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셨다고요?
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고 하네요. 히브리인들도 노예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머물렀답니다(참조. 탈출 16,35). 모세가 해방자 하느님을 만나 뵌 것도 광야였고(참조. 탈출 3),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을 받은 것도 광야였답니다(참조. 탈출 20). 우리네 민초들도 황량하기만 한 변두리 밑바닥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 아닐까요?

너: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고요?
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리가 흔히 지금은 비록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민초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돈도 많이 벌고 출세를 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고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 아닌가요? 민초인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런 유혹을 받으셨지 않겠어요? 예수님께서는 짐승들과 함께, 짐승들처럼,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시자, 천사들이 예수님께 시중을 들었답니다.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민초들도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서 예수님처럼 천사들의 시중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갈릴래아 전도 시작 (마태 4:12-17; 루가 4:14-15)
1장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The Spirit drove Jesus out into the desert,
and he remained in the desert for forty days,
tempted by Satan.
He was among wild beasts,
and the angels ministered to him.

After John had been arrested,
Jesus came to Galilee proclaiming the gospel of God:
"This is the time of fulfillment.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너: 예수님께서 왜 하필 갈릴래아 촌구석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실까요?
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출신일 뿐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으로부터, 즉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두리, 서럽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고장인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십니다. 그 이유는 변두리 밑바닥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이 간절한 민초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하기로 나선 우리 민초들은 어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민초인 우리가 민초들 가운데가 아닌 어디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네 민초들이 선포하는 기쁜 소식을 우리처럼 살아가는 민초들이 아니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너: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나: “때가 찼다.”는 말씀은 우리네 민초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몸으로 뭉쳐서 하느님의 나라를 오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세계 말고 하느님의 나라가 따로 있나요?
나: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로 가득 차면,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세계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로 가득 차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세계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러나 아직은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세계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사랑이 미움을 다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정의가 불의를 다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미움을 몰아내는 그만큼, 정의가 불의를 몰아내는 그만큼 우리 마음과 우리나라와 세계는 하느님 나라가 되어 있는 셈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셈이 됩니다. 그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세계 속에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나라는 시공 안에 존재하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의 삶, 인생, 말, 행동, 활동은 과연 그런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고 있습니까?

너: 예수님께서 민초들을 당신 친구, 당신 동지로 삼으셨다고요?
나: 우리가 흔히 그렇게 하듯이, 민초인 예수님께서도 어부 같은 민초 몇 사람과 사귀십니다. 동지로 삼으십니다. 동아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사귀고 싶습니까? 친구, 동지로 삼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통일뉴스
* 북미관계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려 한다면 북한은 핵‧미사일 동결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3월 25일 이후 재개하기로 한 한미합동군사연습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잠정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면 조만간 북미대화가 평창올림픽 기간에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한반도 화해‧협력‧평화 무드는 평창이후 군사훈련이 재개된다면 급속으로 냉각될 것을 생각하니 아쉽고 안타깝다.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평화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한‧미‧북 3국 정상들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한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