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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들이 해설판성경 미리보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6-06-18 09:17
조회
4282
마태오 복음서 제 4장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마르 1,12-13; 루카 4,1-13)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너: 예수님께서도 별 수 없이 유혹을 받으셨군요.
나: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이라지만, 사람이 된 이상, 우리와 똑같이 재물을 차지하고 명성을 누리고 싶은 유혹을 받으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싶은 유혹을 딱 끊어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또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나고 똑똑하다는 착각을 당장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 차별과 증오와 불의와 불평등과 폭력과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무지와 우매함에서 단번에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너: 그렇지만 그 누가 풍요로운 생활을 마다할까요? 굶주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내내 그래왔지만,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에서는 날마다 10만 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통계가 믿어지십니까? 만일 그 통계가 사실일진대, 과연 누가 그런 참상을 빚어내고 있을까요? 극소수 불의한 부자들이 그런 대량학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사람이 하루 열 끼니를 먹을 수 없고 옷 열 벌을 입을 수 없고 끝내는 어느 날엔가 자기가 왔던 흙으로 돌아갈 신세인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왜 그 극소수 부자들은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을까요? 그것은 악(惡)의 신비가 아닐까요?

너: 또 누구든, 꼬마아이도, 잘 생기고 야무치고 똑똑하다고 칭찬하면 좋아하고, 못 생기고 미련하다고 하면 성질을 내는데, 그런 걸 보고 인지상정이라고 하지 않나요?
나: 인지상정이라, 그것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느낌과 감정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외아드님 예수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못 생긴 사람, 소아마비에 걸린 곰배팔이나 불구병신이나 정신병자까지 빼놓지 않고 당신이 한없이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애지중지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말씀하실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뭇 가난뱅이들과 병자들을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셨던 게 아닙니까?

너: 악마가 예수님께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온 세상 모든 나라와 모든 부를 주겠노라고 말했는데, 그 말 믿어도 될까요?
나: 그 말 믿어도 될 것 같아요. 현실이 증명하고 있잖아요? 모든 나라에서, 온 세계에서 악마기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극소수 사람들이 엄청난 재산을 쌓아놓거나 불의한 지배 권력을 차지하고서 폭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일으켜 대량살육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요? 끝까지 악마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고 끝까지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회개하지 않는 극소수 사람들은 성령님을 거스르는 죄를 지은 셈이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지 않을까요?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다(마르 1,14-15; 루카 4,14-15)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너: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무대는 어디인가요?
나: 예수님께서는 경제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팔레스타인 갈릴래아 지방에서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십니다(마태 4,13). 사회에서 멸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수탈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당국에 잡혀 들어간 다음에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사형을 당한 다음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차별이 없습니다.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회개하기만 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마르 1,16-20; 루카 5,1-11)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너: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십니까?
나: 예수님께서 당신 활동을 시작하신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바다라고도 하는 겐네사렛 호숫가에 있었습니다. 그곳 카파르나움 어부들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을 당신과 협력할 동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학자들이 아니라 어부들을 동지로 삼으신 것은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는 허황된 이론이 아니라 순박한 마음과 행동과 실천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앞으로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과 군중(루카 6,17-19)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너: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활동을 하시나요? 그리고 무슨 일을 하시나요?
나: 예수님께서는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세울 것이 거의 없는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서 활동을 펼치십니다. 그렇게 가난에 찌들고 몸과 마음이 아프고 허약한 사람들을 당신 자신으로 삼으십니다. 정신병자들과 중풍병자들 몸을 당신 몸으로 삼고 그들이 앓는 병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려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해야 옳을까요?

마태오 복음서 제 5장

산상 설교 (5-7장)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참행복(루카 6,20-23)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너: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데요?
나: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어처구니없는 말, 가난한 사람들을 체념하게 하고 물 먹이는 말로 들리지 않으십니까? 가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지겨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아마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가난은 없애야 할 악(惡)이니만큼, 하느님 아버지의 정의(正義)를 실천하고 실현하여 세상에서 가난이라는 악을 없애는 일에 몸 바쳐 투쟁하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너: 인류의 절대다수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가난합니까?
나: 예수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들이 가난해진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라고 베풀어주신 재화를 거의 모두 독차지하고 있는 불의한 부자들과 권력자들로부터 희생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취지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편이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십니다.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몸을 이루어 잃어버린 자기네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불의한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동정심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명령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당신이 선물로 베풀어주신 소질과 능력과 재화를 골고루 나누면서 서로 아끼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려고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 속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너: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부자답게 소유하고 소비하면서도 자기는 마음으로 가난하다고 말하는 부자들은 분명 아니겠지요? 그런 부자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들임에 분명하지 않나요?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온 우주와 세계와 인간들 자신까지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주인이심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재화와 인간의 소질과 능력까지 그 주인은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솔직하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실현하려고 떨쳐 일어난 행복한 사람이 아닐는지요? 그리고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모두 온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닐는지요?

너: 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합니까?
나: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부자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 가난뱅이들, 한시바삐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가난뱅이들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운수대통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좋은 직장을 가지면 행복해지리라는 환상을 가진 가난뱅이들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일부러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너: 그렇다면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나: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땅 위에서 재물을 쌓아두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능력과 뛰어나다거나 재물이 많다고 뽐내고 싶은 허영심을 버리고, 의식주에서 한사코 검소하게 살고 소비절약을 하는 가운데 다른 가난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세상을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로 만들어가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인생 목적으로 삼는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세상의 소금과 빛(마르 9,49-50; 루카 14,34-3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너: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요?
나: 가난뱅이들이 뭉쳐서 증오가 아닌 사랑을 추구하고, 불의가 아닌 정의를 추구해야 세상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가난뱅이들이 마음이 가난해져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한 마음 한 몸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도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더 이상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요 세상을 비추는 빛이 아닐까요?

너: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는 일이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라고요?
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펼치는 운동과 투쟁은 이기적으로 변덕스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겠지요?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안간힘을 쓰는 일이 아니겠나요?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덧없는 자기 출세와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은 바로 그 자녀인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행복이요 영광도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과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 구약시대의 율법과 예언서들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요?
나: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의 역사와 율법 그리고 예언서들의 가르침은 인류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율법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해주는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진정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명령이 무엇인지를 감추는 것이 자기네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고통당하는 백성과 연대하지 않고 그들을 미련하다고 비판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정의보다 더 큰 정의를 요구하고 계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역사를 앞장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고 그 진리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화해하여라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나: 그렇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극소수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줄곧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들을 죽여 왔습니다. 그 극소수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빼놓고 절대다수 사람들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극소수 사람들에게 굴종하면서 살아가는 절대다수 사람들도 잘했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 절대다수 사람들은 그 극소수 사람들의 살인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살인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절대다수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욕하고 때리고 고소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그 절대다수 사람들 상대는 자기네 자신이 아니라 부정부패와 전쟁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그 극소수 부자들과 권력자들입니다. 자기네 자신이 먼저 회개하여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그 극소수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회개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기 위하여 몸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경고를 주고 계십니다.

극기하여라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너: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가 폐지되었는데, 간음을 해서는 안 되다니요?
나: 간통을 하고 간음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기 마음과 몸을 더럽히고 자기 배우자와 자녀를 불행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간음은 크나큰 죄입니다. 이성(異性)을 바라보는 눈길이 음탕해서는 곤란합니다. 모든 여자와 남자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눈길이고 손길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19,9; 마르 10,11-12; 루카 16,18)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너: 이혼이 널리 퍼지고 있는데요, 이혼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나요?
나: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혼하는 사람은 분명히 자기 자신과 자기 배우자와 자기 자녀를 불행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부당하게 이혼한 사람 자신도 행복하게 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여라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너: 요즈음에도 맹세하는 사람이 많나요?
나: 자기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 하는 것, 부모나 자녀나 하늘을 두고 다짐하면서 거짓말 하는 것을 맹세로 알아들으면 쉬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라.”(마태 5,37)는 말씀이지요. 자기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틀어질 리가 없지 않겠어요? 자기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부자도 없고 가난뱅이도 없지 않겠어요? 자기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세상이 한결 바로 서지 않겠어요?